
하이큐!! - 아카아시 케이지x야쿠 코토리(나이 반전AU)
*안개꽃 :: 맑은 마음, 사랑의 성공 ___written by. 푸치
그날의 시작은 새하얗게 빛났지만, 끝은 온통 붉기만 해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흰색의 안개꽃은 어느 샌가 붉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일까요.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
만남은 워낙에 갑작스러운 아이라서,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곤 한다. 바로 지금처럼. 제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카아시 케이지는 어머니의 부름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머리를 깔끔히 묶고 있는 그의 어머니는 아직 피지 않은 벚나무 아래에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엔 한 사람이 더 서있었다. 그가 다가가자 사람은 몸을 좀 더 뒤로 몸을 움직였다.
“왜 부르셨어요?”
이유는 어느 정도 알아차렸지만, 그는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다. 제 엄마는 그저 웃기만 하며 뒤에 숨어있던 사람을 앞으로, 앞으로 내보냈다. 아카아시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눈을 밑으로 흘렸다. “이제 부터 여기에서 같이 살 거야.” 예상은 했지만 뜬금없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한마디였다.
“네?”
“정확한 이유는 나중에 따로 불러서 말해줄게.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일단 인사부터 해야겠지?”
“하지만, 그렇지만…”
“이쪽은 내 아들. 아카아시 케이지.”
“…”
“자, 너에 대해서도 알려줘야지.”
“…입니다.... 야, 야쿠 코토리 입니다...”
소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아카아시는 『상처를 받은 아이』 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런 쪽으로는 감이 좋은 그였으니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굳혀버렸다.
그의 어머니는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는 형식적인 말을 남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남은 사람은 두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의 어머니는 이런 것을 의도한 것이리라.
“…”
“…”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아카아시는 원래 말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딱히 대화를 이끌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편도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싶지는 않아보였다.
“…?”
하지만 그는 의외로 궁금한 것이 생겼다. 소녀, 코토리의 손에 소중하게 들려있는 꽃. 꽃에 대해 지식이 많지 않은 그지만 그녀의 손에 있는 것이 안개꽃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안개꽃을 들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조금은 뜬금없지 않는가.
“...그 꽃..“
“네?”
아카아시가 입을 열자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로 보았다.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건 싫은데…그는 잠시 침묵하다 이야기를 이었다. 안개꽃 맞죠...? 맞은편의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침묵.
코토리도 아카아시도 침묵을 좋아하진 않았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말을 이끌어나가긴 싫었다. 참 모순적인 두 사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안개꽃... 좋아하세요?”
“…네... 많이...”
안개꽃을 꼭 가지고 가렴. 너의 순수한 마음을 꼭 지키렴. 네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되니까.
어처구니없는 질문이긴 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다. 방금 전 아카아시의 그 말에 코토리는 살짝이나마 웃은 것 같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안, 안개꽃뿐만 아니에요. 다른 꽃들도 좋아해요.”
조금 전 처음 봤을 때 보다는 풀린 얼굴. 그 얼굴에 아카아시도 마음이 놓인 것 같았다.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이 불편한 분위기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토리의 작은 미소에 그도 작은 미소를 지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 + +
아침은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늦잠을 자서 급하게 준비한다거나 해서 소란스러운 것도 있겠지마는 조금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
“…헤헤... 깨버렸네요!”
“그러네요. 또.”
또 깨버렸다. 의 또 를 강조했다. 이렇게 강조할 만큼 그녀는 아침마다 유리컵이라든가, 꽃병 등을 깨기 일쑤였다.
처음엔 낯설어서 실수겠지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거의 매일 아침마다 깨지는 소리, 떨어지는 소리가 아침 복도를 채웠다.
처음 이렇게 실수를 했을 때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울먹거리기만 하였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은 능청스럽다면 능청스럽게 반응하기일쑤였다. 가령 지금처럼.
“역시 플라스틱 컵을 써야겠어요!”
“...선배만 조심하면 되는데요?”
“....”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어. 케이지 너는 아침 연습 있다며. 어서 가야지.”
두 사람 사이로 꽂아지는 목소리에 아카아시는 가방을 챙겨 들고 방으로 나왔지만, 곧바로 학교로 향하지는 않았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 와 유리조각을 쓸어 담았다. 제가 하면 되는데! 또 베일 거잖아요. 실제로 깨진 유리 조각을 청소하다 크게 베인 적이 있는 그녀였기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깔끔하게 코토리의 실수를 정리한 아카아시는 그녀에게 조금 있다가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걸음을 옮겼다. 조금 있다가. 라고 하긴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학년이 다른 탓도 있었지만, 그가 운동부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듯 했다.
“어라?”
“왜 그러세요?”
아카아시가 이미 집을 나서고, 뒷모습의 인영조차 흐릿해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부엌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게... 케이지가 도시락을 나두고 갔네.”
“에... 그런가요?”
“흐음... 별수 없지. 코토리 네가 가져다주겠니?”
“아, 네!”
“...가다가 넘어지진 말구.”
“안... 안 넘어져요!”
“후후... 그래 너도 조심히 다녀오렴.”
“네!”
활기찬 목소리와 출발을 한 것은 좋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그녀는 발이 꼬여 넘어질 뻔하였다. 다행이 넘어지진 않아서, 도시락도 코토리 본인도 무사할 수 있었다.
그녀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전부 그녀가 아슬아슬해 보일 것이었다. 굳이 겉으로 보이는 면뿐만 아니더라도…….
“오늘은 날씨가 좋네― 어라. 안개꽃?”
신기하게도 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안개꽃이 피어있었다. 이렇게 쉽게 어디에서나 피는 꽃이 아니건만 웬일로 피어있었다.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작고 순수한 존재. 코토리는 안개꽃을 가만히 주시하다, 자신의 임무를 깨닫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늦게 가면 전해줄 타이밍을 놓쳐버리니까!”
+ + +
“체육관... 체육관.... 아, 찾았다.”
학교에 다닌지 이미 한 달 이상이 흘렀지만, 좀처럼 이쪽으로는 오지 않는 그녀였기에, 쉽게 체육관을 찾지는 못했다. 스포츠 쪽으로 유명한 학교답게, 학교에 체육관이 3개정도 더 있었는데, 주로 체육시간에 쓰는 체육관이 제1 체육관이라면 코토리가 찾아온 제3체육관은 배구부에서 주로 쓰는 체육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불러낼까요? 제 목소리가 체육관 안에 들릴까요? 어떡하지..? 도시락을 두 손에 꼭 쥔 채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뒤에서 그녀를 톡톡하고 건드렸다.
그녀는 당연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익숙함이 있는 얼굴이었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였다. 코토리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여기엔 무슨 일!? 이라며 큰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아! 도시락을... 전, 전해 줄려구요...!”
“도시락?! 누구한테?!”
“아, 그... 아카아ㅅ…….”
“아카아시?! 어이!! 아카아시!!! 누가 너 찾아왔어!!”
코토리는 아직 이름을 다 말하지도 않았건만 앞의 남자는 어떻게 알아듣고는 코토리보다 한발 앞서서 그를 불렀다. 그의 불음을 받고 나온 아카아시의 얼굴엔 귀찮음이 묻어있었다. 또 왜요. 무뚝뚝하게 말하는 그의 반응에는 굴하지 않고 남자는 잔뜩 높은 소리로 여기! 너 찾아왔어! 라며 코토리를 가리켰다.
“어라. 여기엔 무슨 일…”
“도, 도시락이요! 도시락 줄려구요! 여기!”
어느 샌가 얼굴이 빨개진 코토리는 그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그녀의 그런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넘어지진 않을까 하며 보았지만, 이럴 땐 이상하게 넘어지지 않는 그녀였다.
“오오... 아카아시 방금 걘 누구냐?!”
“맞아! 귀엽던데! 일학년?!”
“...아닌데요.”
“뭐?!”
“선배들이랑 같은 2학년 선배예요.”
“뭐?! 거짓말..!”
“제가 거짓말을 왜 해요.”
“하지만 엄청 작았고…”
실제로 코토리는 또래 여학생들보다 키가 훨씬작았다. 앞으로 더 큰다고는 해도 거기서 더 커봤자, 겨우 평균에 걸치는 정도가 될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 들려오는 반응이 이상하진 않았다.
실제로 아카아시 본인도 자신보다 어릴것이라고 멋대로 판단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날. 제 어머니에게서 너보다 누나야. 같은 학교에 들어갈 거니까 선배가 되겠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답지 않게 꽤나 놀랐더라.
“그것보다 진짜로 조금 있다가 만났네.”
“거기! 그만 농땡이 피우고 연습하고 어서 교실로 가자.”
“예!”
+ + +
“안개꽃…….”
수업이 모두 끝나고, 교실 청소당번인 아카아시 케이지는 칠판을 닦으며 제 혼자 중얼거렸다. 안개꽃… 오후에 있던 국어시간에 우연히 찾아본 꽃말이 그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었다.
안개꽃의 꽃말은 예전에 그녀에게서 들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맑은 마음’ 그녀가 안개꽃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꽃말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 새롭게 찾은 꽃말은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의 성공’ 사랑... 사랑을 알기에는 참 어린 나이 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스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은 그날부터 지금 창밖의 노을빛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는걸.
“어라, 아카아시군!”
“...아, 안녕하세요.”
“지금 학교 하는 거예요?”
“네, 뭐. 청소당번이었고. 오늘은 오후연습이 없는 날 이여서.”
“와, 그럼 같이 가면되겠다.”
코토리는 아카아시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언제나의 웃음에 그는 저도 모르게 입고리가 올라갔다. 마음대로 하세요. 집으로 같이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시간이 맞지 않았거나, 그가 멀리 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을 없었다. 실제로 말이 없는 두 사람이었으니, 두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득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뜩 그는 그녀 손에 들린 꽃을 보았다. 꽃에 대해 모르는 그가 봐도 알 수 있는 꽃이었다. 장미꽃.
“꽃?”
거의 무의식 적으로 튀어나온 물음 이었다.
“에? 아, 이거. 아까 누가 찾아와서 주고 갔어요. 당황스러워서 그냥 받아버렸어요. 편지도 있었는데, 그건 집에 가서 읽으라고 해서 읽진 않고 있지만.”
“아.”
아마도 그건 러브레터. 아니 확실히 그것. 코토리의 말을 듣는 아카아시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냥 편지와 선물(꽃)을 받았다 뿐이건만 왜 이럴까. 이렇게 속이 좁은 사람이었나.
겁쟁이에, 속까지 좁다니.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 것 같아요?”
왜 자신이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는 모른다.
“글쎄요. 읽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죠. 아, 빨리 가요!”
“네?”
“벚꽃! 벚꽃이 활짝 피어 있을 거예요!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래요. 빨리 가요. 그래도 넘어지면 안돼요.”
그녀의 천진난만함에 그는 방금 전의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는 살며시 웃었다.
“안...넘어져요! 아마도... 헤헤 아무튼 빨리!”
맑은 그 마음만큼이나 꽃을 좋아하는 그녀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그녀에게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순수한 그녀에게 어떻게…….
이미 ‘그런 마음’을 품었으니까. 순수하진 않은 거잖아. 흰색이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 붉게 물들어 있으니까.
+ + +
성급하게 찾아온 밤의 달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밤의 성급함 만큼이나 달의 빛도 성급했는지,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창문에는 성급한 밤과 성급한 달빛이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곧 또 다른 성급함이 찾아왔다.
학교에서 받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코토리는 손을 놓고 바닥에 누웠다. 끝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편지가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편지에는 대답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굳이 대답을 하라고 한다면 아니요. 일려나.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요. 라고 대답을 한다면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톡톡―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코토리는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어차피 이곳에 찾아올 사람이야 한정되어있으니까.
무슨 일이세요?
할 말이 있어서…….
할 말?
안개꽃의 다른 꽃말.. 알고 있어요?
음… 모르는데...
숨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지만, 코토리는 듣지 못했다. 그 소리를 들은 건 성급하게 찾아온 밤뿐이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물……. 어, 안개꽃이다.”
“난, 알고 있어요. 꽃말.”
사랑의 성공.
이루어지게 해주지 않을래요?
모든 것이 성급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