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퍼즈 - 루이스x소얀
*카틀레야 ::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___written by. 코리
소얀은 여느 때와 같이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소얀, 이 화분들 좀 밖에 내놔줄래? 네, 점장님! 점장님의 부름에 소얀은 얼른 쪼르르 달려가 그녀에게서 작은 화분을 여러 개 받아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따뜻했다. 아, 루이스를 보기 좋은 날이다. 소얀의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콧노래를 가볍게 부르며 꽃집 앞에 화분을 정리하는 소얀의 머릿속은 루이스로 가득했다. 루이스, 루이스. 이름을 부를수록 소얀은 어쩐지 가슴이 벅차오고 얼굴이 붉어져와 얼굴에 가득 번지는 바보 같은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일방적인 짝사랑에서 서로 소통하는, 이상적인 사랑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런 생각을 하니 소얀의 가슴 한 구석이 찌릿 하고 기분 좋은 흥분으로 물들었다. 소얀이 제 사랑을 보답 받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내심 포기하고 있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루이스의 당시 여자 친구는 자신이 봐도 매력적인 전직 모델, 트리비아 카리나였으니까. 트리비아 생각을 하며 소얀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을 흘깃 내려다보곤 무의식적으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으악, 아냐, 소얀, 이런 데서 패배감에 젖으면 안돼! 정신 차려! 소얀은 헛,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래, 지금 루이스는 내 남자니까. 루이스는 가슴 크기 같은 건 크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소얀은 애써 자기 최면을 걸며 다시 꽃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한 번 트리비아 생각이 떠오르는 탓일까, 소얀은 저도 모르게 계속 트리비아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트리비아는 정말, 정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몸매도 몸매였지만, 얼굴도. 빠져들 것 같은 눈, 매혹적인 턱선, 오똑한 콧날, 섹시한 입술. 그 어떤 남자가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까. 그에 비해서 난ㅡ 소얀은 거울을 흘깃 바라보았다. 어디에서나 보일 법한 흔한 여자가 자신을 거울 너머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나름대로 만족했던 자신의 얼굴이 꼴뚜기 같아 보인다, 고 소얀은 냉정히 평가하며 카운터에 머리를 박았다. 쿵하는 큰 소리가 났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
“소얀, 오늘 수고했어!”
“아니에요, 오늘 하루 종일 꽁해져서는 시무룩해 있어서 죄송해요. 내일부터는 제대로 일할게요.”
“우리 소얀씨, 믿는다?”
네에, 맡겨주세요, 점장님! 장난스럽게 경례하는 시늉을 한 소얀은 그대로 꽃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고ㅡ 사이좋게 길을 걸어가는 루이스와 트리비아를 볼 수 있었다. 그닥 다정해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사이가 그렇게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소얀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깜빡. 깜빡. 소얀의 눈앞이 흐려졌다. 소얀은 입술을 꾹 깨물고 뒤 돌았다. 슬프게도, 소얀의 눈에 둘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소얀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루이스는 항상 표현에 야박했다. 사귄 지 몇 년이 된 권태기 온 커플도 아니고, 사귄 지 이제 한 달이 될까 말까 한 커플이었는데, 소얀으로서는 한 번도 루이스에게 먼저 좋아해, 사랑해, 하는 표현을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물론 루이스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ㅡ 그래도. 소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좋지 않은 생각이 맴돌았다. 루이스는 날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변덕으로 잠시 트리비아와 싸운 동안 나를 홧김에 사귄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트리비아는 매력적인 분이고, 나는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 아이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어 소얀은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그리고 소얀은 루이스에게로 향하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루이스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소얀이 그를 일방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다. 다만, 먼저 하던 연락을 끊어버리자 자연스럽게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둘의 관계가 얼마나 자신의 일방적인 매달림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은 소얀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나는 나름 그의 연인이었는데, 그렇게 매일 같이, 자주 연락하던 연인이 연락을 아예 끊으며 걱정돼서라도 먼저 연락하지는 않나, 보통. 이렇게까지 연락이 없을 수가 있을까. 만약 정상적인 연인 사이라면.
그가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그를 볼 자신이 없어졌다. 가만히 앉아 있던 소얀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해져 잠시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 놓자고 생각해 카운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가 유리문을 가볍게 밀었다. 그리고 또 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루이스와 트리비아를. 소얀은 숨을 멈추고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ㅡ잘 어울리네. 소얀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작게 한숨 쉬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루이스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다 소얀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곧 트리비아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얼른 소얀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소얀."
"응, 루이스. 우리, 그만하자."
"……응?"
미소를 머금고 있던 루이스의 표정이 순간 미묘하게 어긋났다. 루이스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소얀의 눈을 바로 보았고, 소얀은 그런 루이스의 눈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트리비아씨랑 둘이 잘 어울리던데, 둘이 잘 해봐요. 나는 별로 이쁜 사람이 아니라, 루이스랑 있기에는 조금 모자란 것 같아. 루이스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아니야, 소얀. 그게 무슨…"
"그렇지 않으면, 나한테 그 동안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번도 먼저 안 해줬을 리 없잖아."
"그건…"
"듣기 싫어. 아니, 듣더래도 그게 지금은 아냐. 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안 좋아요, 루이스. 정말 짜증나. 화가 나.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연락 한 번 없을 수 있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기는 했어요? "
소얀은 입술을 꾹 깨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요. 지금은 얼굴도 보기 싫어. 소얀은 유리문을 확 닫아버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카운터에 다가가 그 뒤에 쭈그려 앉았다. 울고 싶다. 소얀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
오늘 점장님이 쉬는 날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소얀은 뒷정리를 마치고 불을 끄며 생각했다. 점장님이 계셨으면 엄청 죄송했고, 또 민망했을 거야…. 울어버리다니. 창피하게, 진짜. 소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히곤 고개를 휘휘 저었다. 괜히 트리비아한테 주눅 들어 있어서는 땅 파다가 루이스한테 화 내버리고, 울고…. 루이스, 분명 나한테 정 떨어졌겠지. 아, 나, 헤어지자고도 했었구나. 미쳤지, 진짜. 혼자 문에 머리를 두어 번 들이 박은 소얀은 유리문을 잠그고 화분 어딘가에 꽃집의 열쇠를 숨기고는 뒤돌았다.
"ㅡ루이스."
그리고 웬 꽃을 들고 있는 루이스를 볼 수 있었다. 루이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얀에게 꽃을 내밀었고, 소얀은 어색한 손으로 그 꽃을 받았다. 둘의 사이에는 침묵만이 자리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은 연인 사이에 있을 법한 '편한 침묵'이 아닌, 말 그대로 불편한 침묵이었다. 누가 먼저 침묵을 깰지 서로의 눈치를 보던 루이스와 소얀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루이…"
"소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보던 소얀이 입을 꾹 다물자, 루이스가 살짝 눈치를 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꽃 이름, '카틀레야'야. 꽃말은…"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소얀이 울 것만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루이스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는 한 발자국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소얀, 트리비아가 매력적인 여자인 건 맞지만,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건 소얀, 너야. 너는 아름다워, 소얀아. 다른 사람들이 다 아니라도 하더라도,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래.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좋아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어."
한 발자국 더. 루이스는 소얀에게 가까이 다가섰고, 이내 두 팔을 뻗어 소얀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너무 좋아져서, 그래서 무서웠어. 미안해, 소얀아. 하지만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고 있어…….
루이스는 소얀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였고, 소얀은 눈을 꼭 감은채로 그의 품에 안겨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