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살교실 - 아카바네 카르마x아사히나 카노
*벚꽃난 :: 인생의 출발 ___written by. 레아
벚꽃난의 꽃말은 인생의 시작, 너는 나를 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
오늘도 카노는 내 앞에서 방긋, 웃고 있었다. 사실 그 웃음이 퍽이나 좋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시려왔다. 애써 그런 마음을 숨기며 나도 덩달아 너를 바라보고 웃었다. 응, 이래야지, 곧 우리는 헤어질 거니까. 마지막까지 웃자고 약속했으니까.
우리는 같은 중학교였고 같은 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있었으니까, 너와 같이 있는 시간은 당연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꽤 예전부터 좋아는 했지만 작년 초에 겨우 네게 고백을 받고 1년간을 서로에게 열중해왔다. 하지만 결국은 고등학교에서 갈라져 버리면서 너는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를 입학하면 헤어지자며 내게 제안을 했다. 사실은 거절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네 표정이 평소보다 더 진지해보여서, 평소에 부탁은 잘 하지 않는 너라서, 무엇보다 네가 하는 말에는 틀린 말이 없어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후 헤어지기 전까지 서로에게 충실하자, 그리고 울지 말자라며 너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3월 말, 이제 곧 4월, 입학식이니까, 너와 이렇게 데이트하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아직 입학식은 멀었지만 이제 둘 다 입학 문제로 바쁠테니. 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리고 있을 때, 네겐 미안하지만 딴 생각을 해버렸다. 아마 오늘이 끝나면 네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네가 이렇게 밝게 웃고, 네가 이렇게 내 옆에서 걷는 것도 더 이상은 할 수 없겠지.
"카르마,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너는 나를 보며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냐며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내 답을 들은 너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속아주겠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또 다시 마음이 시렸다. 오늘따라 네 미소가 더욱 아름다워서 마음이 더 아파왔다.
또각또각, 타박타박, 내 발소리와 네 발소리가 겹쳐갔다. 평소 같으면 경쾌하게 들려야할 소리여야 하는데 오늘은 영 불쾌한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아아, 이래서 사람 기분이란 모든 것을 좌우한다니까.
그 소음이 사라지자 보인 것은 꽃 축제라고 써진 큰 간판과 주변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 아름다웠다. 너와 같이 그곳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봄꽃을 보았다. 활짝 핀 꽃들보다 네가 더 예쁜 것 같다…, 는 과장이지만 네가 그 꽃들 속에 파묻혀서 웃고 있는 모습은 아름다웠고 보면 조금 마음이 진정되다가도 다시 아파왔다.
너는 이내 내 팔을 잡고 식물관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곳은 안쪽에는 바깥에도, 신기한 식물들이 많던 뒷산 근처에도 없던 꽃들이 가득했다. 아마 해외에서 가져온 꽃들이겠지. 너는 신이 나서 뽈뽈 뛰어다니며 이 꽃, 저 꽃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너와 달리 크게 신은 나지 않았다. 꽃을 볼 기분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널 볼 수 있는 시간을 꽃을 보는데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너의 뒤를 따라갔다.
"벚꽃난···."
"왜? 이상한 거라도 있어?"
너는 한 꽃 앞에서 잠깐 멈칫했다. 그러곤 그 꽃을, 정확하게는 그 꽃의 설명을 유심히 보는 것 같았다. 너는 작은 목소리로 그 꽃의 이름을 말했다. 네가 얼이 빠진 것처럼 서있어 다가가자 너는 내가 온 것을 보곤 방긋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내 손을 잡고 가자는 듯 손을 확 끌어 당겼다. 사실 네가 보던 꽃에 대해 궁금했지만 네가 끌어당긴 손 때문에 몸도 따라 이끌려가서 결국 확인한 건 그 꽃의 이름, 벚꽃난 뿐이었다.
한참을 식물원 안에서 너와 손을 잡고 걸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난 뒤, 너는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을 기념품 가게에 가겠다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네 그런 모습에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냥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분거라 생각하며 너랑 같이 가게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제법 가게 안은 붐벼 너와 같이 들어가지 못해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아까웠다. 너와 같이 있지 않는 시간은 아깝게만 느껴졌다.
"카르마!"
"아, 왔어?"
이런 생각을 한창하고 있을 때쯤, 너는 내 곁으로 뛰어오며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라고 말을 했다. 그런 너의 모습을 보니 정말 오래 기다린 것도 있지만 네게 장난을 치고 싶어서 응, 오래 기다렸어. 라며 말을 했다. 그러자 너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오래 걸렸나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네 모습이 예뻐서 좋았지만 동시에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다시 이런 생각을 하니 울적해졌다. 그래도 네게는 다시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그 감정을 숨기며 너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갈까?"
"그럴까? 음,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나~"
너는 다음은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을까. 라며 즐거운 듯이 살짝 웃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해맑은 것인지 그 의문이 내 머리 속을 돌아다녔다. 안가? 너를 보며 가만히 서있자 너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미안, 또 딴 생각을 해버렸네. 이렇게 말하자 너는 내 이마에 살짝 톡 소리가 나게 손가락 부딪혔다. 오늘따라 정신을 못잡네, 정신 차리시죠, 카르마 씨! 너는 허리에 손을 딱 얹은 채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그런 너를 보자 조금은 긴장이 풀려서 피식 웃었다. 그러자 너도 안심한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응?"
"카르마, 아까 웃었던 거, 오늘 처음으로 웃은 건 알아?"
아, 너는 가끔 이렇게 날카롭게 파고든다니까. 네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너는 내 볼을 제 손으로 살짝 감쌌다. 네 손의 온기가 내 뺨에 머무른다. 돌릴 수 없는 고개를 가만히 둔 채 너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 눈을 볼 수 없어 눈동자를 옆으로 살짝 굴렸다. 네 손이 보인다. 너는 살짝 손을 때었다. 그리곤 내 손을 꼬옥 잡고 다시 나를 불렀다. 카르마. 나는 다시 눈을 굴려 너를 바라봤다. 네 얼굴에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드디어 마주쳤네."
"…갑자기 왜이래?"
"카르마야말로, 오늘 나랑 눈도 마주치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갑자기 왜 이러실까?"
너는 나를 보고 다시 살포시 웃어보였다. 이런 상황이 싫지는 않았지만 계속 이러면 생각했던 걸 읽혀버릴 것 같아서 네 손에 잡힌 내 손을 빼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너는 그럴수록 내 손을 꽉 쥐었다. 너는 이미 내 생각을 알았던 것인지 나를 보며 계속 질문했다. 너와 내 사이에는 침묵이 가득 찼다. 이내 너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있잖아, 우리 약속했던 거, 기억하지? 우리 입학 전까지는 충실하자고 했던 거 말이야."
"…."
"지켜…, 줄거지?"
역시. 너는 이럴 때 날카롭다니까. 가끔 그런 네가 야속하다고 느껴졌지만 오늘은 더 그런 것 같아. 마치 처음 그 약속을 한 것 같은 상황이 됐다. 다시 이런 상황이 되면 아니, 이 말이 바로 나올 것 같았는데 정작 이렇게 되니까 아무 말도 못하겠어. 나도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네 표정을 보니까 더욱. 울렁이는 마음을 꾹 눌렀다. 참자, 참자. 여기서 이러면 안 돼. 입을 때자. 입을 때서 너에게 말하자.
"…응."
"…다행이다."
아아, 결국 또 똑같은 말을 해버렸네. 또 후회하겠지, 그래도 지금은…. 지금은 네가 웃어줘서일까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넌 다행이라는 듯 얘기했지만 약간 씁쓸하다는 듯 말을 했다. 이내 너는 내 한 손 여전히 잡은 채 내 옆으로 가선 이제 가자며 천천히 걸었다. 나도 너를 향해 걸었다. 천천히, 천천히. 조금만 더 같이 이렇게 손을 잡고 걷자. 말이 없는 네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우와…, 벌써 이렇게 됐네."
"그러게. 아, 바래다줄게."
"음, 그럼 우리 집 근처 역까지만."
너와 이곳저곳 돌아다니다보니 벌써 해가 점점 지고 있다. 져가는 해는 파랗던 하늘을 점점 울긋불긋 물들였다. 이제 곧 하루가 끝난다. 끝난다. 너랑 같이 있을 시간이 끝난다. 그래도 아직은 더 있어도 될까 싶은 마음에 집에서 두 역정도 떨어진 네 동네까지만 더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래다준다는 내 말에 너는 너무 늦는다며 역까지만 이라며 선을 그었다. 더 대려다 줄게, 이렇게 말해도 너는 늦으면 위험하다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어. 이렇게 너와 얘기를 하며 역에 들어서자 운이 좋게도, 아니 운이 나쁘게도 전차는 바로 들어왔다. 왜 하필 헤어지기 싫을 때 하필 이렇게 빨리 오는 걸까.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지하철 안은 그리 한적하지 않았다. 다행히 붙어 있는 두 자리가 있어 우리는 그곳에 앉았다.
***
다음 역은…, 다음 역은…. 지하철을 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도착역을 알리는 음이 울렸다. 너는 여기까지면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려 하자 앉아 있으라며 너는 내 어깨를 꾹 눌렀다. 이내 지하철이 섰고 문이 열렸다. 너는 잘 가, 이렇게 외치곤 내게 손을 흔들어 줬다. 평소 같으면 같이 내려서 어떻게든 네 집 앞까지 가겠지만 네 부탁도 있으니까, 오늘은 나도 손을 살짝 흔들며 너를 보내주었다. 응, 조심히 들어가. 카르마도.
네가 떠나간 자리는 금세 다른 사람이 자리를 채워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와아, 이렇게 마지막 데이트가 한 번에 바로 끝나버리다니. 허무하다. 이 단어가 지금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
집에 도착해선 침대에 널브러졌다. 아아, 씻어야하는데. 움직이기 싫은 몸을 겨우 움직여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 거리고 있자 핸드폰에서 문자 수신음이 들려왔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가져와 문자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문자 내용과 발신자 아사히나 카노라는 글씨가 나왔다.
[제목 : 없음
내용 : 잘 들어갔어? 오늘 줄게 있었는데 잊고 있었어. 혹시 내일 시간 비워줄 수 있어?]
이 문자 하나에 살짝 마음이 편해졌다. 한 번 더 볼 수 있구나. 핸드폰을 바라보며 나는 살짝 웃어보였다. 겨우 그 문자 하나에 뭐라고, 기분이 들떠버렸다. 아, 답장하자. 답장.
[제목 : 없음
내용 : 응. 괜찮아. 내일은 아무 때나 시간 있어.]
답장을 보내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답장이 왔다. 그럼 내가 카르마 쪽으로 갈게. 내일 6시에 역 앞에서 보자. 그래, 내일 봐. 푹 쉬어. 응, 카르마도 쉬고, 내일 봐. 몇 번 문자가 오가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한 번 더 볼 수 있구나. 그 사실에 조금 들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카르마! 미안, 오늘도 불러내서."
"야냐, 괜찮아. 그보다 줄게 있다며? 뭔데?"
"아, 이거!"
어제 헤어지던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라 그런지 어제처럼 하늘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멀리서 네가 달려온다. 너는 손을 흔들며 오고 있었다. 너는 꽤 열심히 뛴 것인지 내 앞에 서서 몇 번 헉헉 거리며 숨을 골랐다. 네가 내민 것은 작은 꽃 모형이었다. 아, 그때 산 건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 때 네가 계속 바라보던 그 꽃이었다. 벚꽃난…, 이었나? 그 모형을 계속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너를 바라보자 너는 살짝 웃으며 입을 때기 시작했다.
"그거 벚꽃난이라는 꽃이야. 꽃말은 인생의 시작."
"음…."
"헤헤, 좀 당황스럽지? 나는 인생의 시작 같은 건 탄생 말고도 또 있다고 생각하거든. 가령 결혼이나 이별 같은 거. 그래서 카르마한테 주고 싶었어."
"뭐야, 확인사살 같은 건가?"
"글쎄?"
너는 내 손을 꼬옥 잡은 채 그 꽃의 꽃말을 말했다. 진지했던 너의 표정이 내 말 한 마디에 싸악 걷히면서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그런 네 모습에 나도 마음이 조금 풀려서 같이 웃었다.
"음, 축복의 의미야. 카르마의 인생의 시작을 축복하는 의미."
너는 다시 진지하게 말을 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자 너는 그냥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너에게 미소를 짓는 편이 좋겠지? 너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표정은 잘했어 라고 말을 하는 듯 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렇게 끝나니까. 안심했어. 네가 인생의 시작은 네 축복을 받으며 시작이 됐다.
***
"어, 카노. 이거 기억나?"
"와아, 그거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결혼 전에 짐을 옮기던 중 네가 놀러와 같이 정리를 하던 중 예전에 네게 받았던 꽃 모형을 발견했다. 그걸 보니 그때가 다시 생각났다. 카노는 그 꽃 모형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한 듯 대단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카노, 이 꽃 이름이랑 꽃말도 기억해?"
"응, 당연히."
"그럼 한번 말해줘."
"카르마도 기억하고 있지 않아?"
"그래도, 곧 카노랑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하잖아? 기념으로."
"…역시, 다 기억하구나?"
문뜩 그때 네가 했던 말을 네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어져서 네게 부탁을 하자 너는 굳이 필요하냐는 듯 대답을 했다. 그래도 장난스럽게 말한 한 마디에 너는 한숨을 폭 쉬면서도 살짝 웃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벚꽃난의 꽃말은 인생의 시작, 너는 나를 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