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토라 - 무라사키x해피엔드
*플루메리아 :: 축복받은 사람, 당신을 만나서 행운이야 ___written by. 로즈엘
콤비 탐정 하마토라, 그리고 조수 하지메. 그들이 각종 크고 작은 의뢰들을 해결하고 다닌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며 또한 현실이다. 그리고 위험한 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탐정이나 경찰도 아닌 사람이, 하물며 혼자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여기저기에 빠짐없이 기웃거리고 다닌다는 것은 스스로를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신체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능력’이 그렇게까지 강력하지 않은 축에 속하는 자라면 더욱! 그걸 충분히 알고 있었고 경고까지 들었으면서도 고집을 부려가며 행하고 다닌 대가는 해피엔드 본인의 예상보다 컸더랬다.
답답한 침대 생활에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는 감히 병원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했다. 만약 보통의 병원이었다면 무사히 넘어갔을 법하건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레시오가 운영하는 병원은 미니멈 홀더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인 만큼 경비와 감시가 삼엄했던 것이다.
“해피쨩~! 지금 나오면 안 잡아먹~지~!”
“버스데이,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외쳐. 이봐, 해피엔드! 그런 엉망진창인 몸으로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이건 의사로서의 충고다!”
“싫어. 그렇게 말해도 안 나가. 아무리 그래도 꼼짝없이 몇 주 내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건 지옥이라니까?”
이를테면, 농성전이었다. 사과나 바나나 같은 전형적인 병문안용 과일들을 품에 안고 도주를 시도한 그녀는 버스데이와 레시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건물 기둥에 스며들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물리 투과의 미니멈. 입술을 깨물고 있는 동안은 그 어떤 물건도 통과할 수 있는 능력. 그녀가 가진 힘은 그것뿐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한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다.
건물 기둥을 부순다면 강제로 밖으로 꺼낼 수야 있겠지만, 그 때는 다른 기둥으로 건너가면 그만이라는 것을 레시오는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이 그 문제인 듯했다.
“좋다. 그러면 정말 마지막으로 경고만 하고 가도록 하지. 멋대로 하마토라의 이름을 걸고 사건을 해결하러 혼자 나섰다가 그만큼 크게 다쳤다는 걸, 무라사키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어……혼나겠, 지?”
“당연하징! 아무리 미니멈 홀더라고는 해도 가녀린 여성이 우락부락한 적들이 가득한 적장에 혼자서 뛰어들다니, 아마 엄~청 진지하게 몇 시간은 설교할걸!”
“버스데이의 호들갑은 무시해도 좋지만 내용에는 나도 동의한다. 분명 나이스나 무라사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만.”
“그래도 나이스랑 무라사키는 바쁜데 의뢰인이 찾아왔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내가 해결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온다면 외상 갚기에도 도움이 될 거고…….”
“음. ……그렇게까지 변명한다면, 역시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레시오가 등을 돌리는 것에 맞춰 하얀 의사 가운이 크게 펄럭거렸다. 건물 기둥과 레시오 사이에서 번갈아보던 버스데이도 곧 보란 듯이 등을 돌리고 레시오를 따라서 바삐 자리를 옮겼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둥에서 나오며 능력을 해제한 것은, 역시 그녀의 경험 부족과 크나큰 방심을 의미하는 행위였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정말로 친숙했다. 비율 좋은 장신인 만큼 폭이 길면서 결코 묵직하지는 않은 소리. 그리고 자주 들었던 한숨 소리가 귓가에 도달한 순간, 지레 겁먹은 해피엔드는 입술을 깨물기 위해 이를 세웠다.
“어딜 도망가려고.”
성공했다면 해피엔드에게는 좋았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도주 시도는 명백한 실패로 돌아갔다. 여느 미니멈 능력들이 그러하듯 조건이 갖추어져야 능력의 발동이 성립된다. 해피엔드 그녀의 물리 투과 능력은 입술을 깨물어야만 하는데, 지금은 무라사키의 손가락이 입술 사이를 침범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 물고 싶어도 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건 함께 했던 지난 시간동안 좋든 싫든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분명, 처음 만남 때도…….
“크게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먼저 급하게 돌아왔더니, 이상한 고집을 부리고 있을 줄이야. 보아하니 날뛸 만큼의 기력은 있었던 모양이군. 응?”
“뭐 어때서? 무라사키도 병원에서 신세 져봐서 알 거 아냐?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정말 조용하단 말야. 차라리 깁스를 하든, 붕대를 감든, 휠체어를 타든, 다 좋으니까 병원에서만큼은 나가고 싶었는걸.”
“그렇다고 환자가 의사의 허락도 없이 도망가는 게 용납되는 건 아니지.”
꾹. 정수리에 얹힌 턱이 무게를 더하며 짓누르고 있었다. 다친 것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범주의 아픔이었다.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니까 당연히 아프겠지.”
“무라사키, 나빴어.”
“도망치려고 했던 너는 안 나쁘고?”
“………그야 나도 나쁘긴 했지만, 뭐.”
“……너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해피엔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입술 사이를 막는 손가락에 이를 세우고 있었다.
병원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던가?
손에 잇자국이 남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질 시시한 흔적보다도, 그녀가 혼자 나섰다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는 점과 지금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와 폐를 끼쳤다는 점이 더욱 신경 쓰이고 마는 것이었다.
“하아……. 앞으로는 혼자서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해.”
“뭐야. 무라사키는 나이스랑 잘만 따로따로 움직이면서.”
“그래서, 약속 안 하겠다고?”
“아니. 할 거야. 할 건데, 뭔가 억울해서 그렇지.”
“어린애도 아니고 뭐가 억울해? 억울하면 쉬운 일부터 천천히 같이 해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아마도, 정수리에 턱을 얹고 있지 않았더라면 눈치 채지 못했을 만큼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정하면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야 직성이 풀리던 그녀가 드물게도 고집을 꺾은 걸 성장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연인의 회유이기에 가능했던 일인지, 무라사키에게 있어서는 어느 이유든 좋았다. 그저, 안도할 만한 상황이었을 뿐.
“그럼 병원에서도 멋대로 나가지 않기다.”
“그건 조금 싫은데.”
“대신 매일 병문안 올 테니까 이걸로 좀 봐줘.”
입술 틈에서 방해하고 있던 손가락이 치워지는 동시에, 등 뒤에서 커다란 비닐이 바스락거리며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이미 도망칠 의욕은 물론이거니와 기회와 기력마저도 사라진 상태였다. 좋지 못한 컨디션임에도 능력을 사용했던 것과 쉬어야 할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던 탓에, 오로지 고개만 돌려서 소리의 근원지를 간신히 시야 끝에 담을 수 있었다.
“…꽃? 꽃이야?”
“그래. 병문안 선물로 주려고 했던 꽃.”
“예쁘게 생긴 것 같은데. 무슨 꽃이야?”
“플루메리아라고 하는 꽃이다만, 꽃말은 나중에 알려주도록 할까.”
“…헤? 그렇게 치사하게 나오기야?!”
“무사히 퇴원하면 그 때 말해줄 테니까 일단 가만히 있기나 해.”
레시오에게서 입원 소식을 들었을 적에 제일 먼저 물었던 것이 그녀의 용태였다. 그러니 지금 해피엔드의 상태를 무라사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무라사키는 무릎 아래까지 팔을 내리고 들어올렸다. 그녀가 겪을 부끄러움쯤은, 도주 시도에 대한 또 하나의 벌이라고 바꿔서 생각하니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플루메리아. 축복받은 사람, 당신을 만나서 행운이야. 마지막 순간에 해피엔드가 무라사키에게서 이 꽃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