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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 카게야마 토비오x드림주

 *프리지아 :: 당신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___written by. 먼지

남의 짐을 대신 맡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게야마는 반투명한 포장지와 리본으로 장식된 손잡이 부분을 잡았다가 꽃이 손바닥의 열 때문에 시들지 않을까 싶어 어정쩡하게 팔을 둘러 품 안에 안아들었다.

 

아침 식사 때 무심코 ‘오늘 선배의 졸업식이 있어서 일찍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가 어머니가 ‘토비오! 그럼 선배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전달해야지!’ 라며 집안을 한바탕 시끄럽게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현관을 나서려는 카게야마를 향해 아, 토비오! 잠시만, 기다리렴! 하고 손을 내밀어 멈춰 세운 어머니가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사토 씨? 네, 안녕하세요! 저기, 부탁이 있는데요…”

 

…네. 그럼, 토비오를 보낼 테니까. 알겠습니다. 늘 고마워요! 상점가 근처의 꽃집에 들렀다 가라는 말에 카게야마가 눈을 깜박였다. 졸업하는 것은 선배들인데 왜 자신이 꽃다발을 챙겨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졸업하는 선배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과 아마도 꽃을 받을 선배가 남자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지만 카게야마는 선배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오라는 말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 다발을 이루고 있었다.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 색과 같은 노란색이었다. 플라워 샵 「딜라이트」의 플로리스트 사토 씨가 피어나는 꽃처럼 웃음 지으며, 신기한 듯 꽃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들여다보는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프리지아, 란다.”

 

프리지아? 그제서야 꽃에서 눈을 뗀 카게야마와 사토 씨의 시선이 맞았다.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꽃이지. 향기도… 아주 진하고 매력적이야.

 

“맡아 볼래?”

 

주춤거리며 얼굴을 내밀다가 그만 코끝에 부드러운 꽃잎이 닿았다. 간질간질한 느낌을 참고 그대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풍부한 향기가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향… 어디선가 맡아 본 향인데. ……기억났다. 카게야마는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을 사르르 감으며 중얼거렸다.

 

“…카레 냄새가 나요.”

 

진한 꽃향기 끝에 약간 매운 냄새가 났다. 찌르는 듯한 강렬한 향기에 코를 찡긋거리며 몇 번 더 냄새를 맡는 카게야마를 향해 사토 씨가 곱게 주름진 얼굴로 웃었다. 작은 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색색의 꽃과 녹음이 가득한 화원을 메웠다.

 

***

기름칠을 하지 않은 제1체육관 문이 금속성의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모처럼 마음에 든 아지트였다.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체육관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녀는 졸업장과 앨범을 한쪽에 던져두고 계단을 올랐다. 천장에 닿을 듯 쌓인 매트리스 위에 올라앉아 높은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다거나 높은 창문에서부터 네모나게 재단된 햇빛의 길을 따라 먼지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구경하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섭섭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던 차에 속 시원하기도 했다. 이제 몇 주 후면 오이카와나 이와쨩이 당연하게 곁에 있었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 터였다. 주위에서는 축하한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 축하받을 일인지, 기뻐해야 하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그녀를 신경 쓸 두 사람과 그 가족들을 배려해서 얼른 도망쳐 나오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대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집에…가야 하나?

 

“선배, 계십니까!”

 

깜짝이야! 그녀는 인기척에 놀란 길고양이처럼 몸을 뒤집어 체육관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기세 좋게 그녀를 부른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정쩡한 자세로 품 안에 무언가를 안은 채 이쪽을 보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여전히 폴더형 휴대전화 같은 절도 있는 자세다.

 

“…카게야마?”

“왜 여기 계십니까?”

 

그거, 사람을 불러놓고 할 말은 아니지. 피식 웃음이 났다.

 

“카게야마는, 왜 여기에?”

“지나가다가 체육관 문이 열려 있길래…”

 

또 무단…아니, 휴식중이신가 해서 와 봤습니다. 전에 한번 주의를 주었더니 카게야마는 착하게도 꼬박꼬박 그녀의 땡땡이 내지는 무단 조퇴를 휴식이라고 정정해 주고 있었다. 오늘은 오이카와를 포함한 배구부 3학년들도 졸업했으니까, 후배 노릇을 하러 온 건가. 불편하게 안고 있는 무언가는 아마 꽃다발이겠지. 그런데 왜 저렇게 안고 있는 거야?

 

“오이카와는 교실에 있을 거야.”

 

그녀는 손을 살래살래 흔들어 보였다. 카게야마는 그녀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왜 오이카와 선배의 위치를 제게 알려 주시는 겁니까?”

“그거, 오이카와한테 주려는 거 아니야?”

 

아냐? …그럼 이와쨩인가? 하긴, 오이카와가 네게 좀 괴팍하게 굴었어야지. 어쨌든 이와쨩도 같이 있을 테니까, 가 봐. …아니다.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내던져 둔 졸업장과 앨범을 집어들고는 계단을 내려와 카게야마의 앞에 섰다.

 

“…지금쯤이면 괜찮겠지. 같이 가자. 오이카와한테 데려다 줄게.”

“네?”

“오이카와씨는 여기 있는데?”

 

오늘 다들 왜 이래? 흠칫하며 뒤를 돌아 본 그녀의 눈에 밉살맞아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 들어왔다.

 

“얏호-! 이와쨩보다 내가 먼저 찾아냈어.”

 

역시 오이카와씨 대단하다니까? 이와쨩과 우유빵 내기라도 했는지 표정이 밝았다. 한껏 구겨진 표정의 그녀를 웃음기 가득 담아 바라보던 오이카와의 눈길이 잠시 카게야마의 품에 안겨있는 꽃다발로 향했다. 카게야마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끝이 굳어진 미소를 입가에 건 오이카와가 말했다.

 

“…토비오쨩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오이카와 선배, 졸업 축하드립니다!”

 

어…? 응. 고마워, 토비오쨩.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대뜸 축하부터 날리는 카게야마에게 오이카와가 엉겁결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카게야마의 팔 안에 담긴 꽃다발을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토비오쨩, 네 팔 안에 있는 그거 말이야.

 

“그 꽃은 뭐야?”

“카레꽃 입니다!”

“…뭐?”

 

무심결에 되물은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가 대답했다. 아마도 오이카와는 꽃의 출처나 받을 사람에 대해 물었을 테지만, 카게야마는 진지한 표정 그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 꽃에서 카레 냄새가 납니다!”

 

원래 이름은…프…프리…. 아무튼, 색도 냄새도 카레입니다. 몇 번을 맡아도 똑같습니다. 뒤늦게 합류한 이와이즈미가 뒤에서 눈짓으로 상황을 물어보기에 그녀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프리지아구나.”

“……네!”

 

향이 진하네. 싱싱한 꽃인가 보다. 그녀는 두어 걸음 다가가 카게야마에게 안겨 있는 꽃의 향기를 맡아 보았다. 사랑스러운 생김새에 맞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고 짙은 향기의 끝에, 카게야마가 ‘카레 냄새’ 라고 평한 맵싸한 향이 감돌았다.

 

“응, 확실히 카레 냄새 비슷한 향기네. 향신료 같아.”

“토비오쨩, 도대체 카레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꽃에서 카레 냄새가 난다고?”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도 한 번씩 맡아 보았지만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너희들, 후각에 이상 있는 것 아니야? 꽃에서 무슨 카레 냄새가 난다고 그래? 오이카와의 말에 부루퉁한 표정을 짓던 카게야마는 다음 순간 아무 말 없이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와쨩이나 오이카와 주는 거 아니었어?”

 

그녀가 물어도 한사코 고개를 가로젓던 카게야마는 그녀가 꽃다발을 받아들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고, 빠르게 운동화를 찾아 신고는 체육관 밖으로 달려 나갔다.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카게야마의 동그란 뒤통수에 대고 작게 험악한 소리를 내는 오이카와를 향해 그녀는 망설임 없이 졸업장을 들어 머리와 등짝을 내리쳤다. 말 예쁘게 안 할래? 자비 없는 폭력을 쏟아내는 그녀의 반대편 손에 들린 소담한 꽃망울이 노랗게 빛을 내고 있었다.

 

***

 

플라워 샵 「딜라이트」의 플로리스트 사토 씨는 며칠 전에 전화로 주문받은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다른 꽃을 섞지 않은, 프리지아만으로 가득한 꽃다발을 주문했기 때문에 포장과 리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크라프트지나 반투명 포장재를 이용할까? 도일리 페이퍼를 덧대서 무늬를 만들면 어떨까? 리본은 튀지 않도록 연한 노랑색과 크림색, 두 가지 색의 리본을 섞어서 매어 볼까… 보기보다 연약한 프리지아의 꽃대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리본을 매어 꽃다발을 완성한 사토 씨가 겨우 한숨 돌렸을 때, 가게의 현관문에 달아 놓은 바람구슬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죄송합니다! 주문한 프리지아 꽃다발을 찾으러 왔는데요…”

“아, 마침 딱 다 되었어요.”

 

웃음 짓는 얼굴을 따라 옅게 자리한 주름이 온화한 플로리스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꽃다발을 마주한 손님들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것이 그녀의 기쁨이었으므로 가게 이름의 어원이 되었다. 그래서 꽃다발을 품에 안은 그녀가 풋, 하고 웃으며 어딘가 그리운 표정을 하자, 의아한 얼굴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토 씨의 시선을 알아챈 그녀가 쑥스러운 듯 꽃다발을 당겨 안으며 대답했다.

 

“……꽃에서 카레 냄새가 나서요.”

 

카레 냄새? 사토 씨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불이 켜진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와 싱그러운 프리지아 다발이 그림 같이 어울려 보기 좋았다. 언젠가 이렇게 웃는 손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언제였지? 아마도 이맘때… 아, 생각났다.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 보이는 사토 씨의 눈동자가 온화한 빛을 띠며 반짝 빛났다.

 

“어머나, 언젠가 어떤 남자 아이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단골손님의 아들이었는데. 학교 선배가 졸업하게 되어서, 꽃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었대요. 그러고 보니 어제가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의 졸업식이고, 모레는 다테 공업고등학교의 졸업식이네요. 프리지아라… 손님도 졸업식 선물로 구입하시는 건가요?

 

사토 씨의 물음에 그녀는 꽃처럼 웃었다.

 

“네, 오늘은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졸업식이에요.”

*2016. 04. 05.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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